기억의 습작/베트남

호치민 출장길에 소소한 단상

하노이 나그네 2023. 9. 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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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의 8년간의 삶은 어느 새 지난 41년간의 한국생활보다 8년간의 베트남에서의 삶을 더 친숙하게 느껴지게 만들어 버렸네요.

우연히 베트남에 발령받고 채 2개월이 되지 않았을 2016년 1월의 어느 날...

끄적여 놓았던 메모가 있어 블로그를 통해 다시 회상해보려 합니다.

 


 

베트남의 낯설음도 어느덧 45일째... 
 
이른 새벽의 부산스러움 끝에 얻어낸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쥐고, 공항 스낵코너의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래며 7번 gate의 문이 열리길 하염없이 기다린다. 
 
낯선 이방인들 사이를 헤집고 나에게만 허락된 21A 좌석에 몸을 맡기고서야 편안함과 함께 피곤이 몰려든다. 
 
오직 이 자리에서 나고, 자라고, 생을 마감할거란 사실에 단 한번의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천근성의 뿌리를 흙속에 단단히 동여매는데 모든 시간을 바친 소나무 한 그루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파헤치고 들춰져 허공에 뿌리를 드러냈을 때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을, 호치민을 향해 11,000m 고도에서 시속 950km의 속도로 운해 위를 날라가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나 또한 문득 느낀다. 
 
"난 지금 여기에 왜 있는거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 낯설고 혼란스럽다. 
 
평일의 정신없는 부산함과 휴일의 지겨운 여유가 공존한다.

익숙한 업무의 자신감과 낯선 업무의 두려움이 교차한다.

새로운 경험의 즐거움과 무지에서 오는 낯설음의 공포가 뒤섞인다.

혼자라는 자유홀로됨의 허전함이 뒤엉킨다.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감정들이 원뿌리에서 생겨난 수많은 곁뿌리가 되어 머리속에서 한꺼번에 뻗쳐나와 뿌리를 내리는 듯 어지럽다. 
 
2시간만큼의 거리가 만들어낸 하노니의 추위와 호치민에서 더위의 혼재에 갈 길을 잡지 못하고 헤매이는 이 밤... 
 

쉽사리 잠이 오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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