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이라는 나라/베트남 개요

베트남 전쟁(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1955년 - 1975년)과 미국의 참전(1964년 - 1973년)

하노이 나그네 2023. 9.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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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찌민의 결의와는 달리 남베트남과 미국은 제네바 협정 결의안을 채택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서 1956년에 해야 할 남북통합 총선거도 없었다.

남베트남의 친미 정부는 베트민 지지자들에 대한 테러를 가했고, 결국 이에 반대하는 남베트남 내 공산분자들은 테러 공격을 감행하되며 분쟁이 격화됐다.

1960년 12월, 남베트남에서 '남베트남 해방민족전선'이란 이른바 '비엣콩(베트콩)'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또한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과 중국, 소련의 원조를 받아 더욱 세력을 확장하였고, 미국과 남베트남의 방해공작으로 선거를 통해 베트남 전역을 장악할 수 없게 된 공산 측은 군사적인 수단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1964년 8월 2일)이 중국 공산화와 연이은 한국전쟁 등으로 공산주의가 동남아로 퍼질까 봐 통킹만 사건을 핑계로 북베트남과의 전쟁에 돌입하지만(베트남 전쟁 혹은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미국 역사상 최초의 패전이라는 치욕을 남긴 채 1973년 파리에서 평화조약을 맺고 떠나야 했다. 



1973년 1월 27일으로 파리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지만, 이는 미국이 발을 뺄 핑계거리나 다름 없었다.

무엇보다 워터게이트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 미국 정국이 혼란에 빠진것이 결정타였다. 

1975년 3월 10일에 협정을 깬 북베트남의 침공으로 보름 만인 3월 26일에 다낭 함락, 1달 20일 만인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과 함께 전쟁은 끝났다.

1975년, 북베트남은 기어이 남베트남을 드디어 멸망시켰고, 남베트남 공화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웠다.

다음 해의 총선거로 2,400만명의 북베트남2,000만 명의 남베트남이 합쳐져 4,400만 명의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출범했다.

이로서 독립국 베트남은 통일을 완성했다. 

물론 통일 이후 들어서 중국과의 관계로 인해 사실상 추방당하여 난민이 되거나 공산주의 정권하에서 재교육 등으로 고생한 수많은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다.

덧붙여 두는 이야기지만 베트남 공산정권이 호치민 같은 미담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고, 정치적 탄압이나 수용소 같은 것도 분명 존재했긴했다.

1950년대 중반에 토지개혁을 결정과정 같은 건 생략한 채 강제로 시행했다가 수만 명이 죽거나 다치고 수십만에 이르는 난민이 대거 월남했고, 권력투쟁과정에서 트로츠키파를 숙청했던 게 그 예다. 단지 소련이나 캄보디아 같은 나라들보다 막장성이 덜하다 보니 덜 알려졌을 뿐.

여기서 알아야할 사실은 미국이 지원한 남베트남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남베트남 또한 지엠 정부 하에서 수만 명이 죽고 또 수십만 명이 강제수용소에 감금당했다.

즉 남베트남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친미 반공 독재국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