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이라는 나라/베트남 개요

베트남 소수민족 문제

하노이 나그네 2023. 9. 8.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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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정부가 공인한 민족 수는 54개이다.

하지만 전체 인구의 85.7% 정도를 비엣족(Người Việt)이 차지하기 때문에 나머지 53개 민족은 소수민족이고 그중 가장 많은 타이족조차 1.9%밖에 안된다.

베트남 소수민족 마(Mạ)족 


주변 동남아 나라들이 거의 그렇듯이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소수민족들에게 악랄하게 탄압과 차별을 자행했다.

예를 들어 이슬람 힌두교를 믿던 참족(링크)에게 종교별로 돼지고기 쇠고기, 도마뱀 고기를 강요하였고 힌두교, 이슬람 사원을 허물고 그 자리에 베트남인들이 믿는 대승 불교 을 지었다.

베트남 소수민족 참(Chăm)족

캄보디아를 잠깐 합병했을 때에는 합병 1년 만에 직할 행정구역 설치 및 지명 개명, 창씨개명, 풍습 개조, 캄보디아 왕족과 관리들에게 베트남식 단령 착용 강요 등을 시행하는 동시에 남부 베트남의 크메르족 마을의 경우 베트남인 정착촌으로 크메르족 촌락을 포위하고 강제 통혼 혼혈을 시켜가면서까지 동화시키려고 하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므엉족(몽족)이나 참족같은 일부 소수민족들은 미군의 도움으로 20,000명 정도 되는 부대를 창설해서 결사항전을 벌였을 정도다.

이들을 활용하기 위해 미국은 그린베레 등의 특수부대를 보내 훈련시켰다.


베트남전에서 북베트남이 승리한 이후 이들은 베트남 전역에서 엄청난 학살과 탄압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이웃 나라로 수많은 난민들이 탈출하기도 했고 지금도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출연한 미국 영화 <그랜 토리노>를 보면 이런 소수민족 출신의 이민자들의 삶이 묘사되고 있다.영화 자막에서는 '몽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므엉'족이다.

베트남 다수민족인 킨족의 역사가 참족의 나라인 참파를 정복해 나가는 역사인데다가 19세기가 되어야 지금의 베트남의 영토가 확정되었기 때문에 남북간의 문화가 상당히 이질적이다.

베트남 소수민족 에데(Ê Đê)족

인종적으로도 확 구분이 갈 정도다.

반중 감정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종종 간과되는데 사실 베트남의 소수민족 탄압과 소수종교 박해는 베트남이 제국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중국을 아득히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중국에서 가끔 벌어지던 문화 대혁명 기간 수준의 소수민족 강경 탄압이 베트남 내에서는 상시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베트남 남서부의 떠이응우옌(Tây Nguyên) 고원 지역의 경우 현재도 베트남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934년 기준으로 떠이응우옌 지역 인구의 95%는 소수민족이었으며, 킨족의 인구수는 33,000명에 그쳤다.

그러나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정권은 중부 고원 지역에 225곳의 지역 개발 중심지를 만들어 베트남화 정책의 일환으로 27만 명의 킨족을 이주시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베트남 전쟁이 격렬해지면서 중부고원지대는 치열한 전투지역으로 변했고, 1975년 북베트남의 통일 이후 북부 지방에서의 이주까지 더해지면서 베트남인의 이주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1979년 83만 명이었던 킨족 인구는 1989년 160만 명으로 증가했고, 2010년대가 된 현재 떠이응우옌에는 500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데 이 중 400만여 명이 킨족이다.

베트남 소수민족 커무 (Khơ Mú)족


2001년에는 베트남의 커피 산업이 발달한 떠이응우옌 지역에 킨족을 자꾸 이주시키자 곤란한 상황에 처한 소수 민족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그 해 4월의 제9차 베트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는 소수민족 출신인 농득마인 (당시 의회의장)이 예상을 뒤엎고 베트남의 최고지도자인 당대표로 선출되는 변화를 낳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정부의 킨족 이주정책은 계속된 상황. 

바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캄보디아 동부의 몬돌끼리와 라따나끼리 주의 경우 크메르인의 인구가 20~30% 수준에 불과하다. 인구밀도도 km²당 20명 미만으로 km²당 100명 정도인 떠이응우옌보다 인구가 확실히 적은 편이다.

오늘날 베트남은 소수민족 문제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편이다.

베트남 전쟁 시기 물론 라오스쪽의 몽족이나 중부고원지대쪽에 살던 참족과 같은 일부 산악 소수민족들은 공산정권에 반대하여 미국 편에서 싸우기도 했지만, 북베트남군이나 베트콩 또한 대부분의 북남베트남의 소수민족들을 잘 설득하여 자신들 편에 설 수 있도록 했다.

베트콩이나 북베트남군들에게 있어서 소수민족들의 도움은 필수였기 때문이다.

현재 베트남은 주로 태국이나 중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소수민족 정책을 세워나가고 있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소수민족 출신인 농득마인이 제6대 베트남 공산당 대표를 지낸 적도 있으나 생색내기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베트남 내 힌두교와 이슬람은 씨가 마르다시피 했는데, 중국 내 후이족이 나름 배려를 받는 것과 대조적이다.

베트남 소수민족 자오족

거기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떠이응우옌 같은 지역은 이미 킨족들이 압도적 다수가 된 상황이고, 설사 분리주의를 하더라도 그 지역에 존재하는 여러 소수민족들 간의 극심한 갈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 지역에 대한 베트남의 집착과 커피 산업과 관광 산업을 비롯한 경제적 이익이 상당한 곳이기에 현 베트남 정부가 곱게 포기할 리가 없다.

지금은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 금지가 베트남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베트남 헌법에 있는 민족 간 평등 보장 원칙이 베트남의 법 체계 전체에 걸쳐서 명시되어 있고, 많은 법률 문서에서 체계화하고 구체화되어 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정부의 차별 금지 노력에도 여전히 소수민족에게 비공식적으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여 항상 사회문제로 지적받는다.

 

 

Postwar Vietnam

Hy V. Luong is professor and chair of the Department of Anthropology, the University of Toro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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