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 좋은 글 한 구절/고요한 밤 좋은 시

담쟁이 - 도종환-

하노이 나그네 2023. 8.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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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담쟁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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