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이야기

러시아 도시락

하노이 나그네 2023. 11.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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Доширак 또는 줄여서 Дошик이라고 하기도 한다.

현지 발음은 /다쉬락/ 정도이다.



러시아에서 크게 인기를 끌어 그냥 컵라면 하면 다쉬락이라 할 정도로 일반명사화되었다. 

스테이플러를 호티께스라 부르는 것과 흡사한 언어 현상이다.

러시아에서 성공한 한국 식료품으로는 오리온 초코파이, 오뚜기 마요네즈와 캔음료 레쓰비 밀키스, 빙그레의 스낵 꽃게랑 등을 들 수 있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크게 히트하여 아예 라면업계 최고 지명도를 자랑하는 게 바로 팔도 도시락.

가히 러시아의 국민 라면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위상이다. 

대한민국 - 소련 수교 및 소련 해체  러시아에 일기 시작한 개방의 물결 속에 부산항 등을 오고가는 보따리상 및 선원들을 통해 입소문 같은 것으로 슬슬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런데, 실제로 러시아에서 도시락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러시아 보따리상의 역할이 컸다.

러시아에서 물건을 가지고 한국에 와서 물건을 팔고, 또 러시아에 팔기위해 한국 물건을 러시아로 가져가려고 할 때 추운 러시아의 기온 특성상 따뜻한 국물의 라면, 그중에 컵라면이 보따리상에게 인기가 좋았다.

그런데 부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비용 때문에...) 러시아 보따리상에게 그 당시 원형이었던 타사의 용기면보다는 사각형으로 지그재그로 담았을 때 빈 공간없이 알뜰하게(?) 담아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팔도 도시락이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인해 러시아 보따리상으로부터 러시아에 판매되기 시작한 도시락...

그런 따끈한 국물의 라면, 그 중에서 도시락이 러시아 국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러시아에서 지금의 도시락이 있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급기야 나중에는 육중한 전차와 장갑차, 대전차미사일 같은 흉악한 무기와 맞바꿔가기까지 했다.
94년생 러시아인의 증언에 따르면, 아기에게 먹일 분유를 사려면 마을에서 한참을 나가야 하는 깡촌에 살았지만 이런 곳에서도 한국의 팔도 도시락을 먹어봤을 정도로 깊숙히 들어와 있었다고 한다.

현지 대형마트를 가보면 라면 매대가 큼지막하게 하나 있고 그 매대만한 팔도 도시락 전용 매대가 더 잘 보이는 곳에 별도로 있을 만큼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실제 2013년 도시락의 러시아 지역 매출은 1,900억 원에 달해 한국 판매액(50억원)의 38배를 팔아치웠고, 러시아 용기면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한국의 1위 회사인 농심그룹 라면보다도 훨씬 잘 나간다.

농심도 '돈산'이라는 이름으로 러시아에 진출하기는 했으나 콩라인을 타고 있다.

위에 설명한 것처럼 러시아에서는 '라면'을 '도시락'이라고 부를 정도로 인스턴트 라면의 대표격으로 취급 받는다. 

러시아에서는 "컵라면 주세요"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시락을 준다는 말도 있을 정도.

물론 저가 즉석 식품의 한계로 한국의 육개장 사발면, 왕뚜껑 같은 저가 컵라면과 마찬가지로 모스크바 등 대도시에서는 고명 없이 뜨거운 물만 부은 맨 다쉬락은 '가난한 젊은층이나 먹는 음식', '급하게 대충 끼니 때워야 할 때 먹는 음식'이라는 인식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라면류 중에서는 여전히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등 반나절에서 길면 수 일간의 장거리 기차 여행이 많은 러시아 철도의 특성상 납작한 사각 모양 덕에 가방 속에 넣기 좋기 때문에 평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추운 날씨에 라면 국물이 잘 어울린다.

VJ특공대에 나온 장면에는 먹고 남은 도시락 용기에 반찬 등을 보관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쓴다.

실제로 둥근 형태의 컵라면들은 가방에 끼워 넣기 불편한 것을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다.

이 사각형 용기의 장점은 흔들리는 공간인 기차 안에서도 발휘되는데, 넓적하고 안정적이라 실수로 엎는 일이 드물고 또 용기의 각진 모서리 부분을 이용해서 국물을 편리하게 들이킬 수 있다.

그리고 애초에 러시아 기차는 차나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뜨거운 물을 언제든지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컵라면을 끓여먹기 좋다.

실제로 시베리아 횡단/종단 열차 내에서 도시락 컵라면을 팔고 있다!



또 한국에서 생산되는 다른 라면들에 비해 덜 맵고 삼삼한 맛이 그쪽 사람들 입맛에 딱 맞아떨어졌다고도 한다.

그쪽 기준으로는 맵긴 하나 한국인 취향인 신라면 수준으로 맵지는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한 반면 러시아에서는 대박이 터진 케이스.

게다가 커스터마이징이 수월하다는 점도 인기 요인일 것이다.

그쪽에서는 보통 런천미트 소세지를 곁들여 부대찌개처럼 해먹는 게 인기인 듯 하다. 

마요네즈도 즐겨 풀어먹는다.

이는 보르시 등의 국물 요리에 스메타나(사워크림)를 풀어먹는 식문화의 변형인 셈이다.

참고로 나무젓가락 따위는 기대할 수 없는 러시아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도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게, 현지 로컬라이징이 되어서 용기 안에 플라스틱 포크가 같이 들어있다.

문화적으로는 그렇지만, 경제적으로는 초코파이와 같은 이유로 경쟁자라 할 만한 게 없기 때문인 점도 있다.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것은 석유, 천연가스, 농수산물 등 1차적인 생산품들과 비행기, 전철 등 중공업계 생산품들이 대다수로 상대적으로 경공업이 부실하고 이에 이미 준비된 도시락 같은 경공업계 제품들이 인기를 끄는 것도 있다.


현지에서 도시락의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아예 모스크바 근처에 원 제조사인 팔도가 아닌 '다쉬락'이라는 법인과 공장을 차려서 생산, 수출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야쿠르트의 이름을 본따서 "코야 라면"으로 부르기도 한다.

현지 공장이 있는 도시는 모스크바 근교의 라멘스코예인데, 역사가 오래 된 도시로서 원래 있던 지명(고대 동스라브어로 "숲의 경계"라는 뜻의 'ramenye'에서 파생된 것이라고)으로 우연히 그 곳에 라면 공장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해당 시 시장이 직접 방문해서 격려하기도 할 정도로 상당한 인기가 있는 듯.  

다만 러시아 버전은 그쪽 입맛에 맞게 매운 맛을 많이 줄이는 로컬라이징을 거쳐서 대한민국 판매분과 맛이 꽤 다르다.

또한 러시아의 도시락은 한국의 것과 달리 기존의 뚜껑 방식 포장을 쓰고 있다.

기본형 도시락은 2018년 기준 쇠고기맛, 돼지고기맛, 닭고기맛, 고추치킨맛, 김치맛, 새우맛, 송아지고기맛과 버섯맛 여덟 종류가 있다.

쇠고기맛이 가장 한국 컵라면 맛과 유사하다. 

실제로 러시아 전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쇠고기맛과 닭고기맛에 가끔 버섯맛을 볼 수 있다.

벌이가 쏠쏠한지 원래 모양 말고 왕뚜껑 사발면 종류를 빼다박은 다른 형태의 용기면들과 봉지라면, 도시락 형태지만 국물 없이 비벼먹는 스파게티식 라면(토마토 소스 스파게티맛과 까르보나라(!!)가 있다. 괴식일 것 같지만 생각보다 먹을 만하다) 같은 추가 상품이 나오고 있다.

마요네즈를 풀어먹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노렸는지 아예 마요네즈 봉지를 동봉해주는 '도시락 플러스'도 있다.

이렇게 현지화한 라면 사업으로 꽤 재미를 봤는지, 팔도에서 나왔거나 나오고 있는 제품들 중에 매운맛이 적거나 없는 장라면과 일품 짜장면도 라이선스 생산하고 있다.

도시락 브랜드로 판매 중인 라면만 21종에 이른다고.



상술하였듯 컵라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봉지라면도 당연히 있는데, 크기는 70g 정도로 살짝 작은 대신 개당 15~20루블(한화 330원)로 상당히 저렴하다.

특히 봉지라면에는 컵라면에도 없는 베이컨맛이 있다.

보통 2개, 많이 먹는다면 3개가 적당하다.

다만 식감이 라면보다는 살짝 불은 국수 같은 느낌이다.

또한 장라면 봉지라면은 한국 라면과 비슷하지만 개당 40~50루블로 조금 더 비싸다.

자장면은 개당 60루블 정도.

심지어는 노래로도 만들어져 인기 있을 정도. '다!쉬!락! 예! 예! 루블'이라는 밴드의 노래인데 한국에서는 마이너하지만 놀랍게도 라이브 영상 외에 뮤직 비디오까지 존재한다.

하도 인기가 많다 보니 당연히 중국에 짝퉁 도시락라면도 만들어 팔기도 한다.

중국에서 나오는 짝퉁 라면이 예삿일은 아니지만. 당연히 그 맛이 토 나오기 일쑤라서 러시아인들도 좀처럼 안 먹기에 개밥 취급 당한다.

러시아 외에는 리투아니아에도 진출한 듯하다.

러시아에선 도시락이 라면과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러시아 교육당국이 러시아의 각 학교 학급에 팔도 도시락과 함께 위문 편지를 주문했다.

팔도는 러시아에서 워낙 인기가 많았던 탓에 자연발생적인 일이지만 유럽에서의 반응을 생각하면 난처하다고 말했다.

팔도만으로도 러시아 식품기업을 인수하기 이른다.

다만 제품의 가격을 너무 크게 올려버려 싸고 맛있는 라면의 정체성을 흔들리자 러시아인들이 크게 실망하여 부정적 여론이 퍼지기도 했다.

팔도측에서 재료비 인건비 상승에 가격 인상을 한 것에 추가로 러시아 현지 유통업계에서도 가격을 인상했던 것이 결정타였다.

이에 러시아측 주지사가 직접 팔도 도시락은 러시아인들이 즐겨먹는 식품인데 경쟁 업체와 비교해봐도 가격이 지나치게 올랐다고 우려를 표할 만큼 심각할 정도로 비정상적이다.

900원 짜리가 2000원이 된 셈.

 

러시아식으로 먹어보기

재료 : 팔도 도시락, 마요네즈, 프랑크 소시지, 빵

1. 팔도 도시락에 라면 스프, 후레이크를 뿌린다.
2. 프랑크 소시지도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넣는다. 보통 팔도 도시락 용기 크기를 생각하면 2개가 적당하다.
3. 뜨거운 물을 붓고 거기에 마요네즈를 뿌려 뚜껑을 덮은 뒤 2분 정도 기다린다.
4. 완성!

위의 경우는 좀 더 격식 차린 경우이고, 실제로 저렇게 준비해서까지 먹을 필요는 없다.

좀 더 러시아식으로 즐겨보고 싶다면 젓가락 대신 포크로 쓰는 걸 추천.

포크로 먹을 경우 파스타와 요령이 비슷하다.

마요네즈 때문에 느끼할 것 같겠지만 막상 먹어보면 팔도 도시락의 담백한 맛과 마요네즈의 고소한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져서 지금껏 먹어보지 못한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실제로 해당 영상도 대체로 평가가 좋은 걸 보면 딱히 러시아에 국한될 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맛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러시아인 기준으로는 도시락 라면이 매운 축에 든다고 하지만, 마요네즈를 첨가한다면 매운 맛이 중화되어 먹기가 더 수월해질 것이다.

다만 먹고 남은 국물은 제법 느끼할 수 있다. 밥에 말아먹기엔 좀 그렇지만 빵을 국물에 찍어먹으면 썩 나쁘지 않다. 어차피 러시아인들은 밥보다 빵을 더 많이 먹을 테니. 하지만 이조차도 느끼하다는 사람도 있어서 결국 국물은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들어가는 재료가 재료이다 보니 기존의 라면보다 훨씬 더 칼로리가 높아서 먹기 전 참고하도록 하자.


국물이 느끼하겠다 싶으면 마요네즈 양을 많이 줄여도 마요네즈의 깊고 고소한 맛은 국물에 남기 때문에 무방하다.

이렇게 마요네즈 양을 줄인 상태에서는 밥에 말아먹어도 상당히 맛있다.

사실 도시락이 아니어도 적당한 양의 마요네즈는 라면의 산미를 만들어주고 풍미를 늘려줘 맛있는 편이다.

특히 알싸한 매운맛이 강한 남자라면 같은 라면이 마요네즈 국물과 꽤 어울린다.

(출처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