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이야기

라면의 유래와 역사

하노이 나그네 2023. 9.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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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한반도 남쪽 끝 바닷가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줄곧 시골에서 살아 온 촌놈에게 기억에도 없는 어릴적 처음으로 맛 본 라면의 맛은 이 세상 그 어떤 음식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최고의 맛이었고 환상의 맛이었지요.

그 뒤로 무슨 기념일, 특히 내 생일 때가 되면 항상 생일선물로 부모님께 요구했던 게 장난감도, 돈도, 책도 아닌 라면 한 박스였어요.

부모님이 라면 한 박스를 사주시면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뺏어먹을까봐 다락방 구석에 몰래 숨겨놓고 하나 하나 갯수까지 확인해가며 아껴~ 아껴 먹을 정도로 난 라면 광이었지요.

그런 나를 볼 때마다 지금은 작고하신 어머님이 항상 하시던 말씀....

"으이구~ 저 놈은 나중에 커서 라면회사나 취직하믄 딱 쓰것구만...."

그런데 그 말이 씨가 되었는지 대학교 4학년 한참 취업준비에 정신이 없을 무렵 입사지원서를 냈던 수많은 기업들은 다 불합격되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회사에 입사를 했던 게 한국 야쿠르트라는 회사...

그리고 한국 야쿠르트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마치고 발령을 받은 근무처가 한국 야쿠르트의 계열사였던 (주)팔도...

그 뒤로 어머님의 말씀처럼 한국과 베트남을 전전하며 라면과 인연을 맺은지도 어느새 20년이 되었네요.

20년이면 강산이 두번 바뀌는 시간...

그 동안 그렇게 라면을 좋아하고, 또 라면회사에서 월급받아 먹고 살면서도 단 한번도 라면에 대해 글을 써 볼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드디어 여기를 빌어 라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ㅋㅋㅋ


라면의 명칭

'라면'이라는 단어는 본래 중국의 '납면(拉麵[lāmiàn(라몐)])'에서 왔으나 일본어에서 용어가 재수입된 관계로, 한국에서는 한국 한자음대로 읽은 '랍면'이나 두음 법칙을 적용한 '납면'이라고도 하지 않고 그냥 '라면'이라고 한다.

이는 한국에서 의미하는 '라면'은 거의 대부분 인스턴트 라면이며, 인스턴트 라면이 일본에서 개발된 뒤 1963년 한국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일본어 '라멘(ラーメン)'에서 '멘(メン)'에 해당하는 한자 '면(麵)' 부분만 한국 한자음으로 읽은 것으로 상품명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라멘(ラーメン)'도 본래 '납면(라쓰멘)'을 줄여 부른 표기였으나 현재는 다 '라멘'으로 통일되었다.

중국에서는 원래부터 '拉面(라몐)'이라고 불리던 자신들의 전통 식품 이름으로 부른다.

한국에서 일본의 라멘을 '라면'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라면'은 한 끼를 가볍게 대체하는 인스턴트 라면을 뜻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일본에서는 라멘은 국수처럼 정식의 면 요리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라면'이라고 부를 때에도 '일본 라면', 혹은 원어인 '라멘'으로 구분해서 부르는 편이다.

재미있게도 돈가스의 경우를 보더라도, 돈가스나 돈까스로 읽는 것은 분식집이나 기사식당에서 파는 넓적한 고기 튀김에 소스와 옥수수, 김치 깍두기 등이 곁들여 진 경우를 뜻하고, 일본어 음차를 보다 가깝게 돈카츠라고 하여 판매하는 곳은 대체로 고기를 두껍게 하고 양배추를 수북히 올려주는 곳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라면과 라멘과의 인식 차이는 한국에서도 청년층을 중심으로 일본 문화의 소비가 매우 흔해지고, 또 라면의 발생 과정 등에 대한 정보도 많이 알려짐에 따라 한국에서도 별개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한편 중국 '라몐'은 아예 제조 방식부터 많이 다르기 때문에 '라면'으로 번역하는 일이 거의 없다.

북한에서는 인스턴트 라면 특유의 꼬불꼬불한 형태 때문에 '꼬부랑국수'라고 부른다.

2000년대에 '즉석국수'로 부르게 되었다.

아직도 꼬부랑국수라 부르는 사람이 있긴 하다고 한다. 

'속성국수', '라면'이라는 말도 쓴다고 한다.

중국의 라몐(수타면)

본래 '麵'(라몐)이라는 단어는 손으로 길게 잡아 당겨 늘여서() 밀가루 국수(麵)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한국어 수타면(手打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표현은 요리 '재료'인 국수 가락 종류 중 하나로 국물과는 무관하다.

이런 식으로 만든 면을 장이나 양념에 비벼 먹으면 반면(拌麵), 국물에 말아 먹으면 탕면(湯麵)인 식이다.

후술할 일본 라멘은 탕면 계열의 수타면에서 왔다.

 

일본의 라멘과 간편화

위에서 언급한 탕면 계열의 수타면은 중국에서 일본으로 유입되어 라멘이 되면서 국물을 더 중시하게 되었고, 그 반대로 면은 수타로 만들지 않게 되었다.

1958년, 일본의 기업인 닛신식품은 면을 기름에 튀겨 건조하는 방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닭뼈 육수 맛을 낸 '치킨라멘(チキンラㅡメン)'을 출시했다.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멘이었다.

단, 이 치킨라멘은 아지즈케(味付け) 방식으로 미리 면을 국물에 절여두는 방식으로 만든다.

이 닛신 치킨라멘은 2020년 현재에도 거의 본래 모습 그대로 판매되고 있어 간혹 가다 먹는 별미로서 찾고 있다고.

닛신식품의 창업주였던 안도 모모후쿠는 당시 탈세 혐의에 회사가 부도가 나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다시 부를 거머쥐었고, 인스턴트 라멘 덕에 인생이 핀 덕분인지 "물고기를 원한다면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주면 된다. 하지만 라멘은 아무것도 가르칠 필요가 없다."라는 말을 했으며 2007년 1월 5일 96세로 사망하는 날까지 매일 인스턴트 라멘을 먹었다고 한다.

면을 튀겨서 건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부피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건조된 라면은 부피를 적게 차지하기 때문에 작은 봉지 안에 넣기 용이하다.

인스턴트 라멘의 스프와 건더기가 다양해졌지만 면 모양은 여전히 꼬불꼬불한 것도 포장 크기 때문이다.

애초에 튀김과 동일한 방식으로 제조되다 보니, 굳이 요리를 하지 않고 그냥 먹어도 된다.

그 자체가 이미 밀가루 튀김이다.

컵라면 역시 일본에서 먼저 개발되었다.

마찬가지로 1971년 닛신에서 미국의 인스턴트 라멘 소비자들이 에 라멘을 부수어 넣고 포크로 라면을 먹는 것을 보고 컵라면의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세계 최초의 컵라면인 컵누들을 출시했다.

덕분에 북미 시장에서 인스턴트 라멘의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한국에서 일본의 인스턴트 라멘은 그냥 라면 내지 일본 라면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라면

한국에서는 인스턴트 식품으로 만든 일본 라멘에서 영향을 받아 처음부터 인스턴트 식품으로 출시했다.

1963년 9월 15일에 삼양라면을 원조로 하여 인스턴트 라면이 처음으로 출시되었다.

1950년대 말 보험 회사를 운영했던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은 일본에서 경영 연수를 했을 적에 접했던 인스턴트 라면이 당시 경제가 어려워 먹을 것이 없는 한국 사정에 맞을 것 같아 들여왔다.

 하지만 당시 출시했던 제품은 맛이 한국인의 입맛에 그다지 잘 맞지 않아 별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삼양이 출시한 라면은 일본의 묘조(明星-명성)식품의 제조법을 그대로 가져온 일본식 치킨라면이었고.

이 때문에 닭고기 국물을 재현한 수프라서 느끼한 맛이 났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던 삼양식품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회사 내에 스프 관련 실험실을 설치하는 한편 종로 거리에서 공개 시식회를 하는 등 화제를 모았고, 청와대까지 가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에게 라면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때 라면을 처음 먹은 박정희"우리 한국인들은 맵고 짭짤한 맛을 좋아하니 고춧가루가 좀 더 들어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그리하여 한국의 라면은 기본적으로 매운맛을 가미하게 되었다.


▲1960년대 삼양라면의 원조 격인 묘조라멘의 신문 광고

당시 가격은 10원. 김치찌개 백반이 30원, 짜장면이 20원이었던 시절이니 굳이 지금 물가로 치면 2~3천 원꼴로, 대다수가 빈곤층이었던 당시에는 상당히 고가의 먹거리였다.

더군다나 가난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라면의 대중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60년대 유년기를 보낸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라면은 콜라처럼 손님이 와야 대접하는 음식이었다고 하니 초반에는 그렇게 수요가 크진 않았다. 

검정고무신에서도 이점을 충실히 반영하여, 라면이 당시 서민들에게 고급(?) 음식이었다는 점이 잘 드러난다.

열악했던 60년대에는 라면이 짜장면과 맞먹는 상당한 고급 음식이었으며, 부잣집 사람들이 아닌 이상은 특별한 날에만 겨우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라는 인식이었다.

 70년대 말까지는 도시에도 국수 공장이 있는 동네가 많았고, 국수가 라면보다 훨씬 저렴했다.

그 때문에 짱뚱이 만화를 보면 저녁 때 어머니가 라면을 내놓았더니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내용이 나오고 라면이 비싸서 국수를 섞는 것을 보고 주인공이 싫어하는 내용도 함께 나온다.

그러나 점차 수요가 커지면서 1960년대 중후반 들어서 수많은 회사들이 라면을 만들기 시작했다가, 1970년대가 다가올 무렵에 삼양과 롯데(농심)만이 살아남았다.

1968년엔 동명식품이 풍년라-면을 내놓았는데, 디자인이 압권이다.

삼양이 받은 국가 차원의 지원은 한국 라면의 상징이 되었다.

당시에는 국가적으로 미국에서 수입된 밀가루를 소비하기 위해 혼분식을 장려했었기 때문이다.

이후 쇠고기 육수 맛을 베이스로 해서 한식의 전반적인 경향에 따라 매운맛을 조금씩 넣다가, 특히 농심그룹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라면인 '신라면'이 나온 1986년 이후로는 매운 라면이 특히 더 인기를 끌었다.

신라면 이전에도 매운맛을 내는 라면들이 농심과 삼양에서 나오긴 했지만 신라면처럼 전략적인 상품으로 나온 건 아니었으며 매운 정도도 신라면에 비하면 다소 낮은 편이었다.

(출처 : 나무위키)

https://youtu.be/b1-lMtogMPI